*필운동에서...
우리 집에는 검은 피아노가 있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피아노를 치는 분은 아버님이셨다.
아버님께서는 운동도 잘 하시고 사업도 잘 하시는 멋진 분이셨다.
함경도 북청이 고향이신 아버님께서는 서울에 유학와서 공부를 하셨다.
학생 때는 한강에서 스케이트를 즐겨 타셨는데,
운동을 마치고 나면 아무리 시장해도 전차비가 아까워서 명동까지 달려오셨단다.
왜냐하면...마포종점에서 타고오는 전차비와 호떡값이 같았기때문에...
명동에는 그 당시 중국인들의 음식점이 많았는데...
(내가 국민학교 때도 코스모스 백화점 건너의 명동입구에 몇 집 남아있었다.
공기가 들어간 중국호떡과 빵을 사먹은 기억이 난다.)
그들이 만들어 파는 쟁반만한 큰 호떡을 사드셨다는 이야기를 하시곤했다.
어버님께서는 일찍 집에 들어오시면 피아노를 치시며
'내 고향 남쪽바다~'란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음악에 운동에 사업에...
정말 열심히 인생을 가꾸어 오신 분이셨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불광동으로 이사와서...
여러가지 이유로 아버님과 떨어져 살게되었다.
아버님 사업도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었고...
모든 일들이 불투명한 가운데 우리는 새로 개발되는 갈현동 건너의 언덕배기로
새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검은 피아노는 여전히 안방에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내게 피아노를 가르치려하셨지만 난 그 큰 건반이 너무 싫었다.
마침 이모님께서 바이얼린을 하고계셨기에 난 일주일에 몇 번 레슨을 받게되었다.
작은 스즈끼바이얼린을 턱 밑에 괴고 깽깽깽~~...
내가 들어도 듣기싫은 소리에 연습이 점점 하기싫어졌다.
점점 집안이 기울면서 그 앙증맞은 바이얼린은
호만이란 초보교재 한 권도 떼지못하고 케이스에만 담겨져있게되었다.

*칸소네를 듣다
불광동에서 처음으로 전축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커다란 빅터전축의 뚜껑을 열고 삼촌이 틀어주시던 음악들...
산레모가요제에 나온 '마음은 집시'와 '케세라케세라~~'하는 곡.
지금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오래된 영화음악들...
음악인들이 '메모리'라고 부르는 많은 연주곡들을 그 당시에 듣기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벤춰스의 연주곡과 비틀즈도 삼촌이 즐겨 들으시는 음반이었다.
나는 커다란 스피커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음악을 들으며
삼촌이 사놓으신 세계명작전집을 읽곤했다.
새로 생긴 동네라서 친구도 없었고, 마땅히 놀꺼리도 없었기에
책은 내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소공자' '소공녀' 등이 꼭 들어있는 50권짜리 어린이용 명작전집은
이미 다 읽어버렸기에 삼촌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 읽은 일본소설 중에...'나는 고양이다' '봇짱' 등의 제목이 생각난다.
'노인과 바다'란 소설을 읽을 차례가 되어 책을 펼치고 마루에 앉았는데
며칠이 지나도 영 책장이 넘어가질 않았다.
바닷가의 풍경과 어부들 이야기까지는 그런대로 지나가다가
노인이 바다로 나오는 부분이 되자 난 소설 속으로 빨려들어가서
같이 뜨거운 태양 밑을 헤메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같은 자리에서 맴돈 기억이 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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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mu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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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그래도... 2005.09.21 0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츠메 소오세키... 그걸 읽으면서 일본사람들 참 별것을 다... 했던 기억도 납니다. 일본 사람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사는구나 하기도 했고 소위 소설인데 별 이야기가 다 나오는구나 하기도 했고...

  2. 소박한 2005.09.21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오는 아침,
    김영주님의 추억어린 글을 읽으니
    너무나 반갑네요.
    가을 내내 연재되는 건가요?
    길수록 아니 솔직할수록
    김영주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포도를 드시다가 드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기로 하셨나요? ㅎㅎ
    누군가 제게 했던 얘기를
    여기서 해야겠네요.
    바로 이 말,,,
    제가 좋아하는 쟝르의 글입니다.^^
    기대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3. BlogIcon 김영주 2005.09.21 0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님...^^
    지금은 작가명이 기억나지않지만...
    일본에 대한 이미지중의 많은 부분이
    그 때 읽은 소설로 인해 굳혀졌습니다.
    먼지가 가만히 흐르는 햇빛 속을 묘사하는
    그들의 정서가 마음에 닿았던거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4. BlogIcon 김영주 2005.09.21 10: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박한님...^^
    전부터...
    제 기억을 살려서 어릴 때 이야기를
    적어놓고 싶었답니다.
    어머님께도 여쭤보고...
    사진도 들춰보고...
    음악이야기를 글제목으로 풀어가지만...
    사실...
    작은 자서전이지요...
    아마...오래오래 계속 될 겁니다...
    그런데...
    어느 부분까지 공개해야하는지...
    이러다가...
    커밍아웃하는 사람으로 되어버리지않을지...
    고마운 포도가 내면을 열어주었나보지요...^^
    그리고...
    언제 분석해주시나요?
    ㅋㅋㅋ...

  5. 소박한 2005.09.21 17: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또 사고쳤습니다.
    아이들이 이번주 토요일에 가을 운동회를 하고
    다음주 월요일에 논다고 하길래
    황금같이 노는날에 아이들하고 무얼할 까
    품앗이 엄마들과 함께 고민하다가
    엄마랑 아이랑 함께
    시골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답니다.
    1박2일 코스..
    장소는 우리 친정집^^
    아마도 아산 현충사와 외암리 민속마을을 둘러볼꺼예요.
    마당에 멍석대신 돗자리를 깔아놓고
    벌러덩 누워 별자리를 찾아봐야지...
    내가 어릴 때 시골에 놀러와서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어요.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예요.

    그라고,,
    분석이라~
    통찰 상담으로 할까요?
    지지상담으로 할까요?
    꺼내놓는 것을 봐서 결정하겠습니다.ㅋㅋ

    그런 얘기가 있지요.
    건강한 사람은 모든 문제의 해결을 나에서 찾고,
    건강치 못한 사람은 밖에서 찾는다고
    제경우
    저를 바라보며 상대방을 바라봅니다.
    ,,,
    저도 포도먹고 있어요.
    바람의 향기님집에서 가져온 맛있는 포도
    가까우면 노놔먹을낀디,,,

  6. BlogIcon 김영주 2005.09.22 0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박한님...^^
    포도를 드시다니...
    비밀을 풀 열쇠를 손에 넣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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